구글에 근무하시는 모(?)님의 꾀임에 빠져서...

구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인 텍스트 큐브(http://nuguges.textcube.com)으로 이전하였습니다.

http://nuguges.textcube.com으로 놀러와주세요^^;

2009/10/18 23:11 2009/10/18 23:11

트랙백 주소 :: http://nuguges.cafe24.com/tt/trackback/139

댓글을 달아 주세요

City_net Asia 2009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20090930-20091122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3F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City_net Asia 2009>展은 아시아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아시아 미술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을 모색해 봄으로써, 현대 미술에서 아시아 미술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격년제 현대미술 프로젝트이다."

    전시 소개 글 중에서..


서울 시립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동경 모리미술관, 복경 금일미술관이 각각

양날의 검, 새로운 대륙 이스탄불, 오프 센터, 퇴적작용이라는 타이틀로 섹션을 나누어

도시별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김종구, 최수앙, 이명호 등 유명세를 탄 작가들이 대거 출품하였는데,

각각의 작업이 지나치게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탓에, 너른 공간에 작품이 흩어져있는

느낌을 주는 데다, 과연 이 작업들이 기획의도에 적힌 대로 "한국 현대사회에 자리하는 정치,

문화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병호는 이전 작업들로 볼때 직접적인 시대 현실을 주제로 한다기 보다는

물질의 변화, 혹은 순환을 통해 삶을 고찰한다는 측면이 강하고,

최수앙의 경우도 구체적인 시대 상황보다는 다소 개괄적인 측면에서 사회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명호의 경우는 가장 생뚱 맞은데, 애초에 미학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작업인 까닭에,

어떻게 해도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과는 관련을 짓기가 어려워보인다.


백번 양보를 해서, 한국의 현대사회라는 것이 이젠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 있으며,

과거의 치열했던 외적인 이슈들은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사실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개인화된 내적 이슈 혹은 보편적인 문제들이 예술작품의 주제로서 드러나고 있다는 전제하에

작업이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작업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창원의 녹차 그림에서, 김종구의 철가루 그림에서

관객은 대체 어떤 문제의식을 떠올릴 수 있을까?)


결국 서울시립미술관측에서 내놓은 작업들은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질적인(유명세!?)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서울 섹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정윤석의 설치 작업

<Video Kill the Radio Star>에서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게다가 코미디프로 라디오 스타때문에 더더욱)

익숙한 음악 Video Kill the Raido Star의 뮤직비디오인 정윤석의 작업은,

미국을 상징하는 만화 캐릭터들, 코카콜라 상표, 미국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들,

레이건 대통령의 사진, 베트남전, 냉전시대의 사진 등을 교차시켜 보여주는데,

중간에 잠깐씩 흘러가는 88올림픽 마스게임 영상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서나, 형식면에서나 전세계 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형이라 할만 하다.


쉬넬 오즈멘&엘칸 오즈겐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

할레 텐걀 <횡단면>


한편 이스탄불 섹션이 오히려 서울의 주제인 시대정신에 부합할만한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일단 절반정도의 작업들이 영상물인데다가, 섹션 어디서나 보이도록 크게 전시된 쟈난 세놀의

<마침내 당신이 내안에...>라는 설치 덕분에 비엔날레같은 분위기마저 들게했다.


쉐넬 오즈멘&엘칸 오즈겐의 <테이트모던으로 가는 길>은 돈키호테를 패러디한 영상으로,

터키의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귤슨 카라무스타파의 <내면으로부터의 인식>은

어린시절의 가정 안에서의 기억과, 집 밖, 광장에서의 사건의 영상들을 재구성하고

교차시키면서, 개인에 비춰진 역사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할레 텐걀의 <횡단면>은 이스탄불에서의 삶을 독백하는 영상인데, 화자의 가족이

이스탄불에 이주해오게된 역사, 그리고 과거 오스만 시대에 이스탄불의 이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이스탄불에 모여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스탄불의 시작에서

오늘까지를 관통하는 '어떤 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비록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현실과 역사,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지만,

비 서구권에서라면 어느곳이든 일정부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곳 서울의 관람객인 내게 있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앞서 서울 섹션의 주제의식과 작품 선정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타카히로 이와사키<혼돈으로부터벗어나>

타카히로 이와사키<혼돈으로부터벗어나>


도쿄 섹션은 브로셔에 소개된 대로, 확산, 증식, 축적 등의 방식의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일본작가들의 작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정형화 되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일본적인 시각요소-판화(우키요에)적인 평면성, 장식성, 그리고 오늘날의 망가(만화)까지-를

꾸준히 현대미술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부러운 부분이 아닐수 없다.



중국, 베이징은 큼직큼직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사진작업, 혹은 사진의 모사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전검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로서,

대외에 공개되는 중국의 미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베이징 섹션에 큰 관심을 갖고 보지는 않았다.

(아리랑 꽃씨展 글 참조)



아시아를 주제로 한 교류전의 성격을 띈 만큼, 각 지역의 특수성을 살펴보고, 또 그 안에서 아시아라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전시의 기획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탄불 섹션은 4개의 섹션 중 가장 빛을 발했다고 본다.

 또 같은 맥락에서, 서울 측은 지나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함으로서, 보여지는 측면의

 화려함은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009/10/05 02:26 2009/10/05 02:26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단테01> SF라는 소리에 솔깃해서 네이버 평점을 보니 5점대... 뭔가 심각하구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SF니까..봤다. 감독 "마르크 카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있다. 응? 두 영화는 장-피에르 주네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연출하시다가 독립하셨나? 한데, 찾아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 모두

감독에 장-피에르 주네와 마르크 카로의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있다. 알아보니, 마르크 카로는

만화 및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었고, 영화에서는 주로 미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장-피에르 주네는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분업체제로 공동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마르크 카로가 홀로 감독에 나섰을 때에는, 내러티브에서 뭔가 부족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한데... 예상대로,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다..ㅡㅡ;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아마도 예산부족

으로 스케일을 키울 수 없었으리라...)에서 분위기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약한 이야기를 난해한 영상들로 채워넣다보니, 꾸벅꾸벅 졸기에 딱 알맞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줄거리에서나, 후반부 영상에서나 대니보일 감독의 <선샤인>과 겹치는 이미지가 많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왜 굳이 블로그에까지 소개를 하느냐..하면...

사실, 보면서 10여년전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 후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갖고,

최고의 3D 영상을 만들어 보겠어 라던 때가 있었다. 당시는 3D 컴퓨터 그래픽이 일반화되지 않던 때라,

모니터 안에서 가상의 세계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요새는 그래픽 영상들이 일반화 되면서 3D그래픽은 말 그대로 3D 업종으로 분류가 되는듯..)

이런 저런, 현실적인 벽을 구실삼은 이유들로 해서 3D 그래픽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1인 단편 영화를 완성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스토리를 짜놓았는데,

<단테01>을 보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스토리를 떠올렸다.


 스토리의 이름은 <S.E.E.D>...Search for Earth...어쩌구의 약자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스토리 보기


사실 당시 나우누리 SF동호회의 단편 소설 <십자호의 최후>나,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책을 구해서

 보고 싶은데, 보지는 못했고, 우주선의 추진 원리등을 참조..)를 참조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스토리이다.


<단테01>을 보면서 십자형태의 우주선, 테라포밍, 빡빡머리 죄수, 살신성인(?)등 여러부분에서 이미지가

겹치고 있는데.....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이라기엔 비슷한 생각들을 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영상을 옮길 의지까지 닮았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위의 <단테01>의 이미지와  아래 동영상을 비교해보길..)

2009/10/03 22:36 2009/10/03 22:36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