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_net Asia 2009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20090930-20091122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3F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City_net Asia 2009>展은 아시아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아시아 미술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을 모색해 봄으로써, 현대 미술에서 아시아 미술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격년제 현대미술 프로젝트이다."

    전시 소개 글 중에서..


서울 시립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동경 모리미술관, 복경 금일미술관이 각각

양날의 검, 새로운 대륙 이스탄불, 오프 센터, 퇴적작용이라는 타이틀로 섹션을 나누어

도시별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김종구, 최수앙, 이명호 등 유명세를 탄 작가들이 대거 출품하였는데,

각각의 작업이 지나치게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탓에, 너른 공간에 작품이 흩어져있는

느낌을 주는 데다, 과연 이 작업들이 기획의도에 적힌 대로 "한국 현대사회에 자리하는 정치,

문화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병호는 이전 작업들로 볼때 직접적인 시대 현실을 주제로 한다기 보다는

물질의 변화, 혹은 순환을 통해 삶을 고찰한다는 측면이 강하고,

최수앙의 경우도 구체적인 시대 상황보다는 다소 개괄적인 측면에서 사회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명호의 경우는 가장 생뚱 맞은데, 애초에 미학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작업인 까닭에,

어떻게 해도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과는 관련을 짓기가 어려워보인다.


백번 양보를 해서, 한국의 현대사회라는 것이 이젠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 있으며,

과거의 치열했던 외적인 이슈들은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사실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개인화된 내적 이슈 혹은 보편적인 문제들이 예술작품의 주제로서 드러나고 있다는 전제하에

작업이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작업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창원의 녹차 그림에서, 김종구의 철가루 그림에서

관객은 대체 어떤 문제의식을 떠올릴 수 있을까?)


결국 서울시립미술관측에서 내놓은 작업들은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질적인(유명세!?)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서울 섹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정윤석의 설치 작업

<Video Kill the Radio Star>에서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게다가 코미디프로 라디오 스타때문에 더더욱)

익숙한 음악 Video Kill the Raido Star의 뮤직비디오인 정윤석의 작업은,

미국을 상징하는 만화 캐릭터들, 코카콜라 상표, 미국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들,

레이건 대통령의 사진, 베트남전, 냉전시대의 사진 등을 교차시켜 보여주는데,

중간에 잠깐씩 흘러가는 88올림픽 마스게임 영상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서나, 형식면에서나 전세계 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형이라 할만 하다.


쉬넬 오즈멘&엘칸 오즈겐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

할레 텐걀 <횡단면>


한편 이스탄불 섹션이 오히려 서울의 주제인 시대정신에 부합할만한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일단 절반정도의 작업들이 영상물인데다가, 섹션 어디서나 보이도록 크게 전시된 쟈난 세놀의

<마침내 당신이 내안에...>라는 설치 덕분에 비엔날레같은 분위기마저 들게했다.


쉐넬 오즈멘&엘칸 오즈겐의 <테이트모던으로 가는 길>은 돈키호테를 패러디한 영상으로,

터키의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귤슨 카라무스타파의 <내면으로부터의 인식>은

어린시절의 가정 안에서의 기억과, 집 밖, 광장에서의 사건의 영상들을 재구성하고

교차시키면서, 개인에 비춰진 역사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할레 텐걀의 <횡단면>은 이스탄불에서의 삶을 독백하는 영상인데, 화자의 가족이

이스탄불에 이주해오게된 역사, 그리고 과거 오스만 시대에 이스탄불의 이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이스탄불에 모여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스탄불의 시작에서

오늘까지를 관통하는 '어떤 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비록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현실과 역사,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지만,

비 서구권에서라면 어느곳이든 일정부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곳 서울의 관람객인 내게 있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앞서 서울 섹션의 주제의식과 작품 선정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타카히로 이와사키<혼돈으로부터벗어나>

타카히로 이와사키<혼돈으로부터벗어나>


도쿄 섹션은 브로셔에 소개된 대로, 확산, 증식, 축적 등의 방식의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일본작가들의 작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정형화 되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일본적인 시각요소-판화(우키요에)적인 평면성, 장식성, 그리고 오늘날의 망가(만화)까지-를

꾸준히 현대미술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부러운 부분이 아닐수 없다.



중국, 베이징은 큼직큼직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사진작업, 혹은 사진의 모사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전검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로서,

대외에 공개되는 중국의 미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베이징 섹션에 큰 관심을 갖고 보지는 않았다.

(아리랑 꽃씨展 글 참조)



아시아를 주제로 한 교류전의 성격을 띈 만큼, 각 지역의 특수성을 살펴보고, 또 그 안에서 아시아라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전시의 기획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탄불 섹션은 4개의 섹션 중 가장 빛을 발했다고 본다.

 또 같은 맥락에서, 서울 측은 지나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함으로서, 보여지는 측면의

 화려함은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009/10/05 02:26 2009/10/05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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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개인전 - <기억의 서 : K의 슬라이드>

20090924-20091011

브레인 팩토리



 지난 개인전 <Un-Vanished Memory>展에서 사람이 떠난 빈집에 놓여진 사물들을 스케치 하며,

공간을 소유했던 사람과, 물건들의 역사, 그리고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의 모호한 중첩을

시도했던 것 처럼, 이번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展에서는 주변 공사현장에서 발견한

 400여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단서로, 역시 그것의 주인과, 작가와, 관객의 기억들을 짜집어 나간다.


  전시된 K씨의 흔적-편지, 엽서, 일기, 등을 살펴보며, K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 그 당시는

저랬을 법도 하겠구나,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왔을까, 저 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갔었을까, 이 사진에서

K씨는 누구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며 K씨의 흔적에 젖어들다가, 문득 전시 소개글을 읽어보니

슬라이드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작가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슬라이드의 이미지들마저,

작가에 의해 모호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에, 잠시 '헛' 하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법원이나, 신문사가 아니라 갤러리라는 사실, 즉 내가 해야 할 게임은 '탐정 놀이'가 아니라

'기억 만들기'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면서, 작가의 간극 매꾸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기로 한다.

40여년전 K씨의 기억과 오늘의 나 사이의 간극이, 작가의 상상력과 기억으로 해서, 과연 어떠한 형태로

매꾸어질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듯 싶다.

2009/09/30 08:16 2009/09/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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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아트 선재에서, 계원조형예술대학교의 주최로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키워드를 놓고, 프랑스 제8대학에서 오신 석학들과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5시까지 종일 진행되었지만, 나는 결혼식이 오전에 있는 바람에,
2시경부터 들어가 주형일 교수의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발제글부터 들을 수수 있었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짬은 안되지만, 간략히 소개/느낌을소개/느낌을 적어보자면,

 주형일,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
 - 대중에 속한 사람으로서, 사실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였는데, 다소다소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듯 했다.
 인터넷의 블로그를 사용하는 행위는 자본이 좋아하는좋아하는 아주 착한 자발적인 무보수 노동자에 비해진다는 것,
 공동체(즉, 세력)를 형성해서 인터넷을인터넷을 소유한 자본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의견 제시나,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통한통한 저작권의 무력화, DDOS를 연상시키는 사이트 공격 등의 극단적인 대안은
 어쩔 수수 없이 자본과 공생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요구하기는 (발제자도 인정했다시피)
 무리하다는 생각이생각이 들었다. 질의 시간의 이영준 교수 말마따나, 자본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보다는
 자본에 자본에 이용당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쥘리앙 세레쥬, <자본주의의 사진적 재현에 관하여: 도시와 일상>
 - 자본주의를자본주의를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결과적으로 결과적으로 '일상성'으로 초점이 모여지는 듯 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해변화해 나가며,
 복잡한 양상들이 얽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시선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지엽적이라고 보이는 일상적인 것들이것들이 바로 도시의 모든 것 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은 반대로반대로 말하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미에 말미에 Eric Sadin의 문화분석적인 사진을 모범예(?)로 제시했다.
 한데, 저기서 도시나, 자본주의를 빼고 '삶'을 넣어도 말이 그대로 될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삶, 도시의 삶이기 때문일까?때문일까?
 (참고로 본문과 상관은 없지만 쥘리앙 세레쥬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한다.)

  서동진, <생명의 이미지, 자본의 이미지>
 - 익히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CT, MRI의 의학영상에서 부터, 첨단의 의학영상분야까지 소개를 하면서,
 인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병의 진단을진단을 넘어서서 병의 확률을 이야기 하며
 의료행위와 그 영상들을 자본종속적으로 변화시켜 간다는간다는 이야기. 달변과 신선한 주제로 흥미로웠다.

 박상우, <사진 복제를 통한통한 개인의 식별>
 - 용의자 검거에 사진이 도입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설명과, 그그 사진들의 복제되기까지의 과정들.
후반부는 주로 프랑스 경시청의 베르티용(최초로 사진을 용의자용의자 수사에 도입했음)의 노력에 촛점이 맞춰졌다.
 발표하느라 진땀은 빼셨는데, 다소 발표 스킬이스킬이 부족하셨던듯..^^;





 
ps.1 발제글들이발제글들이 수록된 자료집을 사고 싶었지만, 품절인 관계로, 연락처만 적어놓고 왔다.
내가 듣지듣지 못한 앞서 발제글중, 프랑스와 슐라쥬의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적 관계의 관계들>은
번역도,번역도, 통역도 난해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

ps.2 장내에 들어서면서 놀랐던놀랐던 것은, 대략 2/3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청중. 연령대도 다양한듯 했다.
이렇게 많은많은 여성 예술(or 미학)인구에 비해..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으니..음...
뒤에 앉아앉아 있던 두 여자분은 통역기를 귀에 붙였다 땠다 하며, "통역이 너무한데? 이렇게이렇게 빼먹어도 되나?"
를 연발하고 있었는데..그저 부러울 뿐.

2009/09/29 08:28 2009/09/2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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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실 - Neutral Space
대안공간풀
20090130 - 20090210

모리스 두와
가나아트스페이스
20090204-20090210

주명덕 사진 I - 도시정경
대림미술관
20081126-20090208(연장전시중)





이은실 - Neutral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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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에도 참가했던 동양화단의 이단아.
오픈된 전통 가옥들과 구름속의 풍경들, 그리고 털들...털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인용해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아닐까 싶다.




모리스 두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핏 단편화된 시각의 모음 같아 보인다는 점에서 큐비즘과 맥을 같이하는 듯도 보이지만,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점의 분화보다는 시간의 분화, 혹은 주인공을 둘러싼 '아우라'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그렸을고 고민해보니, 구체적인 형상을 그린 후, 선을 그어 주변 공간을 나누고
비슷한 색으로 칠하는 식으로, 그다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개념이나 철학보다는 시각적인 신선함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상대적으로 짧은 전시기간과 도록의 부실한 서문(그리고 프랑스 관(官)차원에서 작성된)으로 볼때,
한국 미술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적 성격의 전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새로운 시각 보다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영/미/독일권 미술에 비해 프랑스는 시각적인 신선함에
관대한 것 같다는 밍군의 말. 그래서 화가들이 프랑스에 가면 숨통이 트인다나 뭐라나...



주명덕 사진 I - 도시정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더 이상 사진은 다큐멘터리에 적합하지 않아. 비디오 캠코더를 들고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게
사진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지" (주명덕의 인터뷰 中)
"이제 우리 주변의 개인적인 것들을 기록하자" (존 사우스키의 뉴다큐멘트展 서문中)

 오늘날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는 예술과 영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듯 한데, 한국 다큐 사진작가중
그 흐름에 가장 충실히 몸담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주명덕이 아닐까 싶다.
서문의 표현을 빌면 '작가의 도시를 향한 시선과 미학이 담긴 사진'으로,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데,
대체로 광고판들을 빌어 소비의 아이콘을 제시하거나, 건물사이의 공간들을 통해 도시 풍경을 낯설게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2009/02/14 00:59 2009/02/1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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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개의 끓는 점
이소/이현민/이혜인/정혜진/허남준
20090114 - 20090201

이예린 - After the Rain
갤러리 나우
20090128-20090203

김선회 - Finding Sun in the City
갤러리 룩스
20090128-20090210


아래 대화는 냐궁과 밍군의 전시 감상을 대화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섯개의 끓는 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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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 전시 제목 그대로, 전혀 공통점이 없는 작업들인 것 같아.

냐궁: 아무래도 공모전 입상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니까 전체적인 주제는 루즈할 수 밖에 없겠지.
개인적으로는 '이소'의 <순환하는 이야기>라는 작업이 마음에 드네. 익명의 편지돌리기라.....
일방적인 글쓰기라는 편지의 특성 때문에, 하나의 질문에 대해 관객들의 각각 다른 반응들이 재미있어.
한데..100원을 넣고 뽑기를 한다는 것이 재미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포스트잇 붙여놓고
관객들이 글을 쓰는 것과 차이가 없을 것 같지 않아?

밍: 그렇게 한다면 아무래도 참여율이 저조하겠지. '뽑기'라는 것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 정혜진씨의 작업은 무얼 말하려는지 너무 어렵지 않아?

이소,<순환하는 이야기>

이소,<순환하는 이야기>

이혜인, <Shelter-Boat>

이혜인, <Shelter-Boat>

정혜진, <토끼풀꽃과 실패>

정혜진, <토끼풀꽃과 실패>

냐궁: 동감이야. 석고로 토끼풀꽃을 만드는 것 보다 팝콘으로 해보는게 더 재미있이 않았을까?

밍: 팝콘 재미있겠다. 강냉이도 괜찮을 것 같아 잘 썩지도 않을테고...

냐궁: 이혜인씨 작업의 주제는 '변화'인가?

밍: 기억, 망각 등등까지 포함한다고 봐야겠지. 금번 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젊은모색'展의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거야. 공사 현장의 그림들은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서 그림의 맥락을
어느정도 짚어낼 수 있는데, 검은색으로 지우면서 나열식으로 표현한 그림들은 다소 접근이 어려운
느낌이 있네. 차라리 검은색으로 지우지 말고, 기억들을 레이어처럼 중첩해서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냐궁: 허남준씨의 작업과, 그 작업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전시론에는 어느정도 동감할 수
있지만, '손가는대로'식 작품론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워.

밍: 뚜렷한 의도 없이 덧칠해지는 물감들..., 아마 학교에서라면, 교수님들의 호된 질타를 듣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림에 뿌려진 반짝이들과 바니쉬들은 팔리기 위해 준비된 상품과 같은 느낌을 주어서
거북한 느낌이 들었어.

냐궁: 이소씨의 작업이나 허남준씨의 작업에처럼 요즘 예술의 화두는 관객과의 '소통'일 것인데,
예술가의 설명을 보면 그럴듯 하긴 하지만, 왠지 그들만의 논리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 경우에 이소씨의 '익명 편지돌리기' 작업에 참여해서, 편지의 일방적인 성격이나, 하나의 질문에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다른 관객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단지 그 뿐이었어. 그냥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거야. 내가 참여함으로 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단 말이지.

밍: 허남준씨의 퍼포먼스-관객은 구경하게 되는-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그냥 관객들은 구경할 뿐이지. 그것이 어떤 관객들의 행동이나 생각의 변화, 혹은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하지는 못하거든. 작가가 던지면, 관객들이 그냥 반응하는 수동적인 소통인 것이지.
어떻게 보면, 관객들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수동적인 감상에 익숙해져 있는데, 갑자기 작가가 잘 알 수도 없는 작업들을 들고나와서
'소통'을 외치면서 관객에게 다가온단 말이지. 거기에 대해 수동적인 반응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냥 반응일 뿐이지 '소통'이라고 이야기 하긴 어렵겠지.

냐궁: 어쩌면 지금의 '전시'-'감상' 으로 구성된 지금의 미술관 제도의 구조적인 한계일 것도 같아.
'소통'하면 관객이 참여해서 작업을 만들거나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렵잖아.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 하면, 미술관 벽을 부수는 작업에 관객이 참여해서 망치질을 한번씩 한다던가...

밍: 미술관이 잘도 좋아하겠네^^.


이예린 - After the Rain

이예린 <in Praha>

이예린 <in Pr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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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 거꾸로 뒤집어 보니...정말 평범한 사진이구나..

냐궁: 반영을 제외하고 흑백처리한 것 빼면...평범한 사진이야..
현실과 가상의 문제를 논하자는 건가? 그러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비온 후...비의 흔적이 보이는 시간의 세상..(중략).. 내가 가진 눈으로는 명확히 보이는,
내가 밟고 있는 이 세상, 그리고 잔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리는 가녀린 자연의 액자와 그 여린
바람에도 흔들리고 있는 세상...(작업 노트 중)

밍: 작가의 말이 솔직해서 좋네..그리고 물결에 의한 미세한 떨림들도 보이긴 하니까...
영화 포스터 같은 느낌도 들고 거꾸로 죽 늘어놓으니까 시각적으로는 괜찮은 것도 같아.
뉴욕 미술사 교수가 적은 데카르트의 허상 현실 천재악마 등등의 말은 닭살스럽네.
굳이 그보다는 뉴욕이라는 국제적인 도시, 그 이미지에 대한 향수 등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는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냐궁: 그러게.. 개인적으론 이렇게 큰 사이즈로 인화할 거면 픽셀이 깨지지 않게끔
원본의 해상도에도 신경써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아무리 대형 사진이 유행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깨지는 디테일은 안타까워...


김선회 - Finding Sun in th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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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궁: 사진마다 숨어있는 작가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정말 별로인 사진이 될 뻔 했어.

밍: 전시 서문을 읽지 않았다면, 작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 했어.
작가의 모습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작가의 모습만이라도 칼라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그러고보니 '박현두'의 <Goodbye Stranger>작업이 생각나네. 역시 이국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작업인데, 이 작업보다는 분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해.

박현두, <Goodbye Stranger>

박현두, <Goodbye Stranger> 시리즈 중.


냐궁: 작가는 관광객도, 현지인도 아닌 경계의 상태인 자기의 모습과, 그런 자기에게 비추어진
무미건조한 도시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흑백으로 랜드마크들을 촬영한 것 같지만, 사진들이
너무나 '잘 찍은' 사진들이라서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덜한 것 같아. 차라리 관광객들이 일반적으로
찍는 구도 - 다소 못찍은 듯한 연출이 자신의 경계상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을 것도 같아.
그리고 본인은 '자화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분명 누군가 찍어준 사진인데, 그렇다면
자화상이라기 보다는 포트레이트, 그리고 그 찍어준 사람에 대한 '소통'의 측면에 있어서
자신이 경계상태에서 '외롭다'라는 느낌은 반감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밍: 같은 맥락에서 이런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관광객처럼 사진을 찍는 것 보다는,
어떤 자기 주위의 공동체를 배경으로 대조적인 자신의 모습을 담는 것이 경계상태의
자신의 모습을 전달하는데 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경계의 상태..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장소나 문화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 문제 아닐까. 굳이 외국이 아니라도, 학교나, 회사 등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 시작할 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경험하게 되는것 같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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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궁: 그런데 오늘 본 전시 중에서, 갤러리 그림손에서 있었던 15명의 단체전을 포함해서...
사진작업들이 모두 외국의 이미지-그것도 미국이나 유럽의 모습들인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사대적'인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밍: 하긴, 그런 사진에 'XX 해물탕' 같은 간판이 들어있다면 왠지 갑자기 격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 들 것 같기는 해. 앞서 이예린의 뉴욕 사진에서도 지적했지만,
국제적인 도시들의 이미지에 대한 향수도 사진을 감상하는데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

냐궁: 이런 사진들을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
우리들이 가지는 느낌하고는 차이가 클 것 같은데..


 

2009/02/01 02:52 2009/02/01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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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의 Shoeaholic "Dream Girls"
20090104-20090123
갤러리 토포하우스



 네오룩에서 현재 진행중인 전시를 뒤적거리다 눈에 확 들어온 '하이힐' 그림들.
여성성, 소비, 욕망 등의 선정적인(?) 키워드를 달고 있으니, 냐궁이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기에,
필름도 현상 맡길 겸, 갤러리도 돌아볼 겸 잠시 인사동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전시장을 들어서자 100호, 혹은 그 이상의 커다란 캔버스에 가득찬 하이힐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니쉬등의 처리 없이 붓질과 매트한 느낌, 색상 조합만으로 하이힐의 반짝이는 느낌을 낸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이 범상치 않음은 느껴지는데...(표면이 무척 균일해서 처음엔 에어브러쉬로 작업한게 아닐까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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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스테이트 먼트와 그림을 번갈아 보며 스테이트먼트에서 강조한 '여성성'과 '욕망'에 대해 느껴보려 했으나,
아무래도 남자인 내게 '하이힐'을 보고 어떤 성정 상징이나 욕망을 느끼기는 무리인듯 했다.
아마 여성이라면 최소한 '가지고 싶다'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작업을 주욱 둘러보며 느낀 것은, 작가의 전략적인 모습이 무척 돋보이는 작업이라는 것.
스테이트먼트에 밝히고 있듯, 순수 예술과 광고 사이의 줄타기를 시도함으로써,
어설프게 순수 혹은 상업성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뒀고,
'하이힐'이라는 (아마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소재를 등장시킴으로서,
(혹은 남자라면 백화점에서 가격표를 보고 신발이 뭐이리 비싼가 하고 한번쯤 당황했을만한..)
관객 혹은 사회로의 열려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의 장르가 '오브제'로서 누군가의 집에 부담없이 걸만한 내용과 형식을 취하고 있고,
 실제로 금강제화의 후원을 받아 몇몇 작품들은 핸드백에 프린트되어 각 매장에 홍보될 예정이라니,
 작가의 기민한 전략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다만 이왕 금강제화가 아닌 구찌라든가의 좀 더 고급
 브랜드였다면, '소유욕'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보는 이를 자극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듯 순수와 상업 사이에서 양자를 모두 취하는 전략을 보이고 있음에도,
개인적으로 보다 상업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까닭은,
작가가 '하이힐'로 드러내고자 하는 '여성성', '욕망', '소비'의 현상들이
그것들이 '왜?', '누구에 의해서?'라는 질문에는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굳이 '상업성'이나 줄타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지. 땅파서 돈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결국 현대 예술과 자본의 굴레에서는,
 균형잡힌 줄타기라는 것은 명성과 부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이니 말이다.
다만, 이 '드림걸스'의 줄타기는 다소 소심해 보인다. 다음 작업에서는 후원사를 당혹스럽게 하더라도
좀 더 과감한 줄타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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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00:57 2009/01/1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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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22:57 2009/01/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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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corche 2009/01/09 0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트 하러 가기 좋겠는데요? ^^

    미국 갔다 와서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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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사진페스티발
20081213 ~ 20080115
구 서울역사



 지난 일요일 구 서울역사에서 진행중인 서울국제사진페스티발을 다녀왔다. 문화부와 서울시가 주관하고 5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꽤나 규모있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추운 날씨탓인지, 을씨년스러운 구서울역사의 분위기 때문인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호주의 사진작가 폴리세니 파파페트루의 작가 해설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동심-자연을 주제로한 사진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류의 사진들이 최근 하나의 주류로 부상하는듯 한데, 이번 전시에 초대되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로레타 럭스나(Loletta Lux), 아래 스웨덴의 루비자 링보르그(Luvisa Ringborg) (좌), 영국의 줄리아 플러튼-바텐(Julia Fullerton-batten), 호주의 폴리세니 파파페트루(Polixeni Papapetrou)가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사진들에는 "Wonder Land"와 같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차용한 제목들이 따라다닌다! - 루비자 링보르그/폴리세니 파파페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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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자 링보르그가 궁금해?


줄리아 플러튼-바텐이 궁금해?


폴리세니 파파페트루가 궁금해?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인간 풍경(Human Scape)"이고,
 안을 바라보다 / 타인을 느끼다 / 밖으로 나가다의 세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루즈한 주제의 전시가 그러하듯, 섹션별로 확연한 차별성을 느끼기는 다소 어려운편이다.
 그보다는 작가 개개인의 면모와 작품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울 듯 하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작품들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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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  떡으로 얼굴을 빚고, 흑임자, 고추장 등의 음식을 통해 삶과 죽음, 먹고 먹힘 등의 관계를 살펴본 작업. 무엇보다 최근의 국제적인(즉, 작업만 봐서는 작가의 국적이 서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작업들이 유행인데에 반해서, 우리의 먹거리(흑임자,김치,고추장, 떡 등)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도 데드마스크와 벌레, 용암 등을 연상시키면서 주제에 부합하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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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숙 - 여성성과 남성의 성적 환타지  등에 대한 작업들로 위 작업의 제목은 <경매>이다. 이 작업보다 건물을 통째로 빌려 포르노그라피-관음증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작업이 유명하다(귀찮아서 스캔 안했음-.-) 난 아무래도 이렇게 메세지가 강력한 작업을 선호하는듯..

다니 르히쉬(Dany Leriche) <여신>시리즈 (다소 선정적이라 접기 처리^^)

전반적으로 기독교 성인이나,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패러디한 느낌. 기존 남성들이 구축해온 이미지를 철저히 파괴하고 개척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인 작업.


그리고 영예의 전당에 영국의 수잔 앤드류(Susan Andrew)<Black Dog>연작이 선정되었는데,
작년 4월에 갤러리 온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갤러리 온 전시 후기 보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그들의 뒷모습을 병치한 작업이었는데, 그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치유의 과정인 동시에,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갖고 있는 "우울"에 대해서 본인을 돌아보고, 혹은 사진의 사람과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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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무력감,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겨움에.....




 한바퀴 휘 둘러보자면, 참여 작가들 모두 이미 인정받았거나, 혹은 인정받기 시작하는 작가들인지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눈이 호강하기는 두말할 나위 없음이다. 다만, 이런 식의 루즈한 주제의 대규모 전시가 항상 그렇듯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또 이들의 명성에 한줄 추가 됨과 동시에 마켓 진출의 교두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알려진 대표작들만 출품된것도 문제라면 문제.) 물론,  청소년 사진전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사진전이 더불어 열리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대행사격인지라, 비중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활동하는 몇몇 작가들이 모여서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새로운 작업을 협업 or 개인작업해보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같은 불만은 말하려는 바가 강렬하지 않은-이를테면 자신 스스로에게 향하는 작업들, 셀프 포트레이트 및 유년의 환타지 등의 - 작업들 보다는 메세지가 강력한 - 다소 사회를 강력하게 반영하는 - 작업들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크게 작용한 점도 있다.)
2008/12/17 01:10 2008/12/1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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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lm 2008/12/25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지내고 계시온지?
    내일 모레면 솔이가 결혼식을 올리는군요 허허 -_-;
    가시게 되면 꼭 안부 전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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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젊은 모색
국립현대미술관
20081205-20090308


"1981 <청년 작가>전으로 시작되어,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를 함께 겪어온 <젊은 모색>전이 올해로 15회를 맞이했다.....(중략)..... 미술계를 휩쓸고 있는 표피적인 대중주의에 영합하고, 자본주의 미술 시장에 길들여진 예술의 이성을 깨우며,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젊은 작가들의 신념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서문 中)

 우선 왼편의 본인 얼굴에 불쾌하신 분께 심심한 위로부터...--;


둘리 노래를 기억하시는가?

"요리보고~, 저리봐도~, 알수 없는~ 으흠~ 예술!"

굳이 다시 강조하지 않더라도, 마치 정신착란증 환자를 연상시키는 현대 예술 작품들과, 거기에 드러나는 애매함과 불친절함들은, 어느덧 현대 예술의 덕목이 되어버린듯 하다. 수수깨끼 같은 작품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답답한 마음에 브로셔나, 도록의 글들을 읽다보면, 힘, 에너지, 본질, 자아, 정체성등의 선문답에 머리가 멍 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무뚝뚝한(혹은 할 말이 없는)" 작품들에 진저리가 난 관객들을 위해 17명의 작가가 한데 모여 전시를 이루었다. 바로 <2008 젊은 모색>


 17명의 작가들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수다스러운" 작업들을 선보이는데, 그중 가장 수다스러운 몇몇 분만 소개하고자한다.




고등어 : 시각적으로도 초강력한 회화 및 설치작업들은, 이 사회를 지탱(지배)하는 남성성에 맞서 여성들의 방황과 상처와 목소리를 찾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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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실 : 얼핏 보기엔 은은한 한폭의 동양화로 보이지만, 다가서는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성기들에 당황하게 될 지어다.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반항 (실제로 동양화과 대학원에서 교수님들한테 왕따 중이라고 한다..)


최원준 : 일전에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개인전 - UnderCooled 에서 이미 한번 본 적이 있다. 수다스럽게 보이는 작업과 달리, 본인의 마음속은 조용한듯 하지만... 암튼 이젠 완전 떴구나(KIAF에서도 봤다) 싶다.


이완 : 회전하는 원판에 죽은 참새를 파먹고, 자라고, 흩어지는 구더기 그리고 끊임없이 갈아치워지는 욕망의 소비재들. Forbidden Land의 아이스크림 산이 무너질때, 구더기에서 태어난 파리와 그 죽음. 작가에 의해 야구공으로 재탄생된 마트에서 파는 생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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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 당신은 어떤 상(像)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이 사회의 상들은 과연 정상인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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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일 : 미술계와, 명품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사대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하나하나 위트가 넘치긴 했지만, 범위가 워낙 넓어서 수다스러움에 정신이 살짝 없을 정도.


 
 17명의 작가와 그 작품들은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고, 질문을 던지면서, 요컨데, "과연 관객-당신은 안녕하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러한 작품과 관객-사회와의 관계맺음이, 예술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임은(누구나 자신의 작업은 사회적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분명하고, 이 작가들이 <젊은 모색>이라는 커다란 영예에 주눅들지 않고, 그들의 신념을 꿋꿋히 관철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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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21:44 2008/12/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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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lstein 2008/12/15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어렸을때의 미술관 충격을 아직도 기억해.

    수많은 '무제' 들...

    어쩌라고... ㅡ,.ㅡ

    • 냐궁 2008/12/15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지 캔버스에 "무제" 라는 제목...-_-
      이런 작업들만 찾아봐도 한트럭 나오지 않을까?

  2. 2008/12/17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ㅡ,ㅡ 작품과 관객-사회와의 관계맺음

    외에 말들은 휘리릭 안녕!

    내 마음이 피폐하군..

개천절을 낀 금토일 황금 연휴 - 였지만, 결국 토요일 오후에야 출발, 결과적으로
일요일 하루 급하게 광주 비엔날레를 둘러보고 왔다. 찜질방에서 잠을 제대로 못자서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 강행군 하다가, 2주동안 골골 앓아 눕고 이제야 정리해서 올리게 되었다.



2008 광주 비엔날레 [연례보고]
20080905-20081109
광주 비엔날레본관/시립미술관/의재미술관/대인시장/광주극장


신정아씨 덕분에 시작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비엔날레,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올해 비엔날레는

 비엔날레 본관,
광주 시립 미술관
 의재 미술관
대인시장
광주극장


이렇게 다섯곳에서 나누어 진행되는데, 시간 관계상 대인시장은 도착한 날 저녁에 훑기만 했고,
비엔날레 본관과 시립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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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에 도착하니 7시가 다 된 시각, 실내 행사들을 둘러보기에는 늦은 시각인듯 하여, 대인 시장을 찾았다. 시장 천장에 걸려진 현수막을 따라 들어가면 되는데, 늦은 시각 때문인지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카메라 들고 두리번 두리번 하는 무리의 사람들만이 여기 뭔가 있구나 알려주는 정도.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단)(작)]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시장 속에서 자신들이 작업하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며 모인 공간이다. 10여평이나 될듯한 좁은 3층 건물에 자신들의 작업실을 마련해두었다. 낮에 왔으면 작가들이 관객들을 뭔가 재밌게도 해줄 법 했지만, 시간이 늦은 탓에 작가들은 귀가했고, 군데군데 놓여있는 작업들만 구경했다. 시장 속으로-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겠다는 의도는 이해하겠는데, 그들의 작업(3층에 온통 하얗게 발라놓은 작업을 제외하고는)은 그것과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긴 했다. 

집창촌 사진 보기




 몇몇 작가들은 시장 가게를 개조해서 자신만의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예술이라는 것도 시장 속에 묻어 놓으니 그냥 물건파는 가게랑 다를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을 따라 따라 걷다보면, 지난 베이징 올림픽 특수를 단단하게 누리고 있는 장미란 벽화(셔터에 그려진)를 볼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 장미란 옆에서 셔터를 드는 시늉을 해볼 듯^^. 한데, 셔터에 그려진 것이니 만큼 가게가 문을 열어 셔터를 올려버리면 작품을 못보게 될텐데... 아마도 빈 가게이렸다. 재래 시장의 몰락과, 그 자리에 재래 시장에 무언가 의미를 밝혀보겠다고 나타난 예술작품. 한데, 그 예술작품이 결국은 시장이 셔터를 내리고 있을 때에만 보여질 수 있다. 뭔가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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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찜질방에서 괴로운 하룻밤을 지새고, (정말 찜질방에서는 잠을 못자겠다..ㅠ.ㅠ)
비엔날레 본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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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한 작가만도 100여명이 넘는 방대한 규모이지만,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작업들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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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임 숀펠트 (Joachim Schoenfeldt, 남아공)
Sketch for Four Musicians(moo, roar, chee-ow, yeeeoh)
 아마도 전시관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자리덕을 톡톡히 본 작가가 아닐까 싶다. 브레멘의 악사를 모티브로 의사소통의 불완전함을 전달하려 했다는 작업. 원래는 계단모양의 단상에서 4명의 악사가 불협화음을 연주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유럽의 동화인 브레멘의 악사들의 동물들을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동물들로 치환한 것은 아마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인듯.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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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ythm Mastr: Every Beat of My Heart, 2008

작가가 설정한 흑인 슈퍼 영웅들의 모습을 담은 만화,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통해 미국에서 흑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들. 단일 작가로는 한스하케의 설치 작업과 더불어 비엔날레 본관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다. 작가의 작업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들과 함께 인형극을 상영하고, 작업도 같이 진행한다는 것(즉 작가의 일방통행적인 작업이 아니라는 것). 수잔 레이시가 말한 <뉴 장르 공공미술>과 궤를 같이 하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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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Jina Park, 한국)
Moontan
사실 딱히 인상 깊지는 않았지만, 한국작가라서 넣었다. 선(sun)탠에서 따온 문(moon)탠이라는 제목들의 밤스냅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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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지(Eunji Cho, 한국)
진흙시_엑소더스
(신도시가 건설되는) 파주에서 훍 한덩이를 정사각형으로 도려내와, 전시 당일 전시장 벽에 흩뿌려짐으로서, "탈출"했다 라고 외치는, 다소 황망한 작업. 신도시, 타자, 탈출 등의 키워드를 조합하면 뭔가 할 말이 많을 것도 같은데..



한스하케(Hans Haacke, 독일)
내가 비엔날레를 찾은 제1의 목적. 한스하케의 작업을 볼 수 있다는 것. 새로 발표한 작업이 아닌, 기존 작업들을 옮겨놓은 것이라 다소 아쉽기는 했다. 총 4개 작업이 전시되었는데, <Wide White Flow>, 1958년(맞나?) 카셀 도큐먼트 사진들, 1971년 구겐하임에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전시가 취소되고 큐레이터는 해고당햇던 맨하탄의 부동산의 소유 관계를 다룬 작업, 1992년 미국 빈민정책을 비판한 Trickle up이다. 카셀 도큐먼트의 작품들을 보며 대체로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관객 사진들을 보면, 지금의 우리 비엔날레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라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도 지어지고, 책에서나 보던(그렇다고 실제로 본다고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부동산 작업도 실제로 보게 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 그래도 역시 광주를 위한 작업이 없다는건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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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요(Jewyo Rhii, 한국)
환호하는 베어즈
아 이건 정말 모르겠다. 작가는 박이소의 절친한 친구라는데... 박이소 띄워주기의 선봉장이라도 되겠다고 결심한걸까? 작업들을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대여하고 돌려받고... 아 그래도 비엔날레급 작가인데..뭐가 있겠지.



 

조동환&조해준(Donghwan Jo & Haejun 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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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전공한 부자(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의 작업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버지의 기억들을 한장씩 드로잉으로 그려낸 작업. 마치 '검정고무신' 만화를 보듯, 한국의 역사를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통해 증언한다. 총체적(혹은 종합적인) 역사라는 것은 결코 설명될 수 없지만, 개인의 단편적인 역사들을 둘러보고 있자면, 어렴풋하게 전체적인 역사의 덩어리를 그려볼수 있다.



마이다다 민영순, 알랭 드수자, 압델라리 다로치(M"YDADAYong Soon Min, Allan deSou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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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delali Dahrouch)
Proposal for Projectory
 작동이 되고 있었다면 임팩트가 강렬한 작업이었을 텐데, 내구성(?)의 문제로 가동이 중지된 것이 아쉬웠던 작업. 작업은 팔레스타인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국경 너머로 돌을 던지는 사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가 돌을 던지는 개인적인 행위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와, 돌이 국경을 넘어 떨어졌을 때 그것이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피칭머신은 야구공을 아크릴판으로 쏘아 대고, 아크릴판 뒤쪽의 밀실 속의 관객들은 아크릴 판을 흠집내는 무시무시한 야구공의 위력과 갇힌 공간에서 증폭되는 파열음의 충격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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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 아비디(Bani Abidi, 파키스탄)
From the Series Security Barriers A-L

파키스탄 출신의 작가는 주변에서 보이는 바리케이트를 카달로그처럼 하나씩 그려냈다. 그렇게 해서 그린 바리케이트 종류만도 십수가지. 작가가 처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방법의 바리케이트들과, 아주 약간의 세계뉴스에 대한 지식만으로도, 작가가 주변의 현실을 드러낸다. 드러나는 현실과 대조적인 단조로운 그림들이 묘한 긴장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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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스 파렐(Seamus Farrell, 영국)
중고차문으로 만든 UN 서클(UN Circle, In Recycled Car Doors)
UN을 회의장을 형상화한 작품. 중고차 문이 주는  삐걱거리는 느낌, 스산한 느낌, 용도 폐기된 느낌등이 다소 냉소적으로 다가오는데, 나의 받아들임과는 상반되게 희망적인 느낌으로 소개를 하는 도슨트. 작가는 정말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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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 Feria / (빈센트 + 페리아)
익스폴라토리움0.3(Expolartorium 0.3)

이번 전시를 통틀어 가장 부러운 작가'들'(부부)이 아니었을까? 세계를 누비며,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 지구의 희망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설파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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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레이 자파(코소보)
칼린(Khaleen)
양탄자 하나로 세계의 권력과, 돈의 흐름을 명료하게 표현해냈다! 아프가니스탄의 양탄자 장인들은 이 카펫을 만들기 위해 약 5년의 시간을 소모한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단돈 100달러. 그리고 이작업이 미술관에 놓였을 때 붙여지는 가격은 아마도 그 수백, 수천배에 이를 것이다. 양탄자 장인들은 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본뜬 양탄자를 제작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비엔날레 관을 둘러보니 어느덧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물품보관소에 맡긴 가방과 외투를 찾으려니,
담당자분이 맡긴 시간을 보고는 "여태 여기만 계셨어요?" 놀라며 묻는다.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휘휘 한바퀴 둘러만 보고 가는게 보통인가보다.
(참고로 도슨트 따라 한번 돌고, 찬찬히 하나씩 보러 또 한바퀴 돌았음..)

시립 미술관에는 고든 마타 클락展과 대만 교류전이 있었는데..(바로크 거장전 같은건 관심 없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단연 고든 마타 클락이었다.

 고든 마타 클락(Gordon Matta-Clark)(1943-1978)은 비교적 최근에야 재조명받기 시작한 작가로 작년 휘트니 뮤지엄에서 "당신이 척도다"라는 제목으로 회고전이 열린 이후 관심이 급속도로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건축을 전공했던 그는 철거 예정인 건물에 들어가 건물들을 자르고 토막내어 감추어진 공간을 드러내고,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감추어진 공간을 드러낸다는 것은, 비단 표면적인 공간 뿐 아니라, 그 공간에 살고 있던 사람의 흔적, 나아가 그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는 빈곤의 문제와,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부동산 문제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1971년 한스하케가 맨하탄의 부동산에 대해 작업을 진행한것을 떠올려보라!)
 철거예정인 건물에서 단속반과 쫓기며, 또 아슬아슬한 구조물 위에서 곡예를 부리듯 작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현재 그의 작업은 사진 및 영상물들, 그리고 아주 간혹가다 건물에서 도려낸 잔해들 정도만 남아있긴 하지만, 건물을 쪼개면서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기능하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고든 마타 클락에 대한 때늦은 주목은 이상할 것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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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비엔날레 도록 및 전시장의 설명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내용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내 관점에서는 충분히 사회와 체제에 비판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작업들인데, 다소 작가의 내면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듯한 느낌들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ps2. 대충대충 통계로 보는 광주 비엔날레(대충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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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9 16:08 2008/10/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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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밍. 2008/10/26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종이로 만들고 사진으로 찍은.
    오빠 맘에 들었던 건 왜 리뷰에 없는 거샤?

  2. 2008/11/01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보니깐 기억이 생생!
    첨엔 종이로 만든지 잘 몰랐었는데.. 토마스 데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