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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18 텍스트 큐브로 이전하였습니다. (http://nuguges.textcube.com)
- 2009/10/05 City_net Asia 2009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 2009/10/03 단테01 & S.E.E.D 프로젝트
- 2009/09/30 장보윤 -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
- 2009/09/29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 국제사진이론학술대회
- 2009/09/13 상도4동 산65번지 (상도11지구)
- 2009/08/28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서용선展 & 아리랑 꽃씨展
- 2009/08/13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그리고 달력
- 2009/08/06 [20090803-20090805] 고흥반도여행
- 2009/08/01 전시합니다. - SLAP-2 세상의 숨결
City_net Asia 2009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20090930-20091122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3F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City_net Asia 2009>展은 아시아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아시아 미술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을 모색해 봄으로써, 현대 미술에서 아시아 미술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격년제 현대미술 프로젝트이다."
전시 소개 글 중에서..
서울 시립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동경 모리미술관, 복경 금일미술관이 각각
양날의 검, 새로운 대륙 이스탄불, 오프 센터, 퇴적작용이라는 타이틀로 섹션을 나누어
도시별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김종구, 최수앙, 이명호 등 유명세를 탄 작가들이 대거 출품하였는데,
각각의 작업이 지나치게 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탓에, 너른 공간에 작품이 흩어져있는
느낌을 주는 데다, 과연 이 작업들이 기획의도에 적힌 대로 "한국 현대사회에 자리하는 정치,
문화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병호는 이전 작업들로 볼때 직접적인 시대 현실을 주제로 한다기 보다는
물질의 변화, 혹은 순환을 통해 삶을 고찰한다는 측면이 강하고,
최수앙의 경우도 구체적인 시대 상황보다는 다소 개괄적인 측면에서 사회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명호의 경우는 가장 생뚱 맞은데, 애초에 미학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작업인 까닭에,
어떻게 해도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과는 관련을 짓기가 어려워보인다.
백번 양보를 해서, 한국의 현대사회라는 것이 이젠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 있으며,
과거의 치열했던 외적인 이슈들은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사실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개인화된 내적 이슈 혹은 보편적인 문제들이 예술작품의 주제로서 드러나고 있다는 전제하에
작업이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작업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충분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창원의 녹차 그림에서, 김종구의 철가루 그림에서
관객은 대체 어떤 문제의식을 떠올릴 수 있을까?)
결국 서울시립미술관측에서 내놓은 작업들은 한국현대사회의 이슈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질적인(유명세!?)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서울 섹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정윤석의 설치 작업
<Video Kill the Radio Star>에서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게다가 코미디프로 라디오 스타때문에 더더욱)
익숙한 음악 Video Kill the Raido Star의 뮤직비디오인 정윤석의 작업은,
미국을 상징하는 만화 캐릭터들, 코카콜라 상표, 미국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들,
레이건 대통령의 사진, 베트남전, 냉전시대의 사진 등을 교차시켜 보여주는데,
중간에 잠깐씩 흘러가는 88올림픽 마스게임 영상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서나, 형식면에서나 전세계 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형이라 할만 하다.
한편 이스탄불 섹션이 오히려 서울의 주제인 시대정신에 부합할만한 작업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일단 절반정도의 작업들이 영상물인데다가, 섹션 어디서나 보이도록 크게 전시된 쟈난 세놀의
<마침내 당신이 내안에...>라는 설치 덕분에 비엔날레같은 분위기마저 들게했다.
쉐넬 오즈멘&엘칸 오즈겐의 <테이트모던으로 가는 길>은 돈키호테를 패러디한 영상으로,
터키의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귤슨 카라무스타파의 <내면으로부터의 인식>은
어린시절의 가정 안에서의 기억과, 집 밖, 광장에서의 사건의 영상들을 재구성하고
교차시키면서, 개인에 비춰진 역사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할레 텐걀의 <횡단면>은 이스탄불에서의 삶을 독백하는 영상인데, 화자의 가족이
이스탄불에 이주해오게된 역사, 그리고 과거 오스만 시대에 이스탄불의 이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이스탄불에 모여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스탄불의 시작에서
오늘까지를 관통하는 '어떤 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비록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현실과 역사,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지만,
비 서구권에서라면 어느곳이든 일정부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곳 서울의 관람객인 내게 있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앞서 서울 섹션의 주제의식과 작품 선정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도쿄 섹션은 브로셔에 소개된 대로, 확산, 증식, 축적 등의 방식의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일본작가들의 작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정형화 되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일본적인 시각요소-판화(우키요에)적인 평면성, 장식성, 그리고 오늘날의 망가(만화)까지-를
꾸준히 현대미술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부러운 부분이 아닐수 없다.

중국, 베이징은 큼직큼직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사진작업, 혹은 사진의 모사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전검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로서,
대외에 공개되는 중국의 미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베이징 섹션에 큰 관심을 갖고 보지는 않았다.
(아리랑 꽃씨展 글 참조)
아시아를 주제로 한 교류전의 성격을 띈 만큼, 각 지역의 특수성을 살펴보고, 또 그 안에서 아시아라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전시의 기획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탄불 섹션은 4개의 섹션 중 가장 빛을 발했다고 본다.
또 같은 맥락에서, 서울 측은 지나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함으로서, 보여지는 측면의
화려함은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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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SF니까..봤다. 감독 "마르크 카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있다. 응? 두 영화는 장-피에르 주네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연출하시다가 독립하셨나? 한데, 찾아보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델리카트슨 사람들> 모두
감독에 장-피에르 주네와 마르크 카로의 이름이 공동으로 올라있다. 알아보니, 마르크 카로는
만화 및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었고, 영화에서는 주로 미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장-피에르 주네는
내러티브에 치중하는 분업체제로 공동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마르크 카로가 홀로 감독에 나섰을 때에는, 내러티브에서 뭔가 부족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한데... 예상대로,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다..ㅡㅡ;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아마도 예산부족
으로 스케일을 키울 수 없었으리라...)에서 분위기는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약한 이야기를 난해한 영상들로 채워넣다보니, 꾸벅꾸벅 졸기에 딱 알맞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줄거리에서나, 후반부 영상에서나 대니보일 감독의 <선샤인>과 겹치는 이미지가 많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왜 굳이 블로그에까지 소개를 하느냐..하면...
사실, 보면서 10여년전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 후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갖고,
최고의 3D 영상을 만들어 보겠어 라던 때가 있었다. 당시는 3D 컴퓨터 그래픽이 일반화되지 않던 때라,
모니터 안에서 가상의 세계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요새는 그래픽 영상들이 일반화 되면서 3D그래픽은 말 그대로 3D 업종으로 분류가 되는듯..)
이런 저런, 현실적인 벽을 구실삼은 이유들로 해서 3D 그래픽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1인 단편 영화를 완성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스토리를 짜놓았는데,
<단테01>을 보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스토리를 떠올렸다.
스토리의 이름은 <S.E.E.D>...Search for Earth...어쩌구의 약자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스토리 보기
-1-
배경은 먼 미래, 우주식민지 개척이 한창인 시대이다. 테라포밍(행성 지구화)가속화에 대한 연구가 한창인
외딴 행성계에서, 장치의 실수로 행성이 폭주하고, 행성계가 파괴되는 참사가 벌어진다. 이미 식민지화가
진행되고 있던 인근 행성들까지 휩쓸려 수십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관련 과학자들 중 극소수만이
폭주 직전에 탈출에 성공한다.
-2-
지구의 법정은 이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물어 처벌 대신에 S.E.E.D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S.E.E.D 프로젝트는 극형에 처해진 죄수에게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의 혈벌 대신에, 테라포밍 장비를
실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떠돌다가 적합한 행성에 이르면 생명의 씨앗을 심어놓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 편도 미션인 것이다. 우주선엔 4명의 인원이 탑승하며, 4개의 행성에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3-
기약없는 미션을 떠나는 주인공. 적합한 행성에 접근할때까지 동면상태로 유지된다. 첫번째 행성.
앞서 대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폭주해버리는 행성, 두번째 세번째도 동일한 결과. 주인공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 네번째 행성을 마주하고 미리 입력된 셋팅값을 확인해보니,
테라포밍장비의 셋팅값이 행성을 파괴하도록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음모.
사실 S.E.E.D는 미래의 인류에게 위협이 될만한 생명이 자라날 행성들을 파괴하기 위한, 사실은
행성 파괴 계획이었던 것이다. 최초의 폭주 역시 그렇게 계획되었던 것.
주인공은 이럴 순 없다고 생각한다. 테라포밍의 셋팅을 바꾸는데는 살아있는 사람의 신체 조직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몸을 기계에 내던지는 주인공. 그리고 생명이 피어나는 행성.
사실 당시 나우누리 SF동호회의 단편 소설 <십자호의 최후>나,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책을 구해서
보고 싶은데, 보지는 못했고, 우주선의 추진 원리등을 참조..)를 참조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스토리이다.
<단테01>을 보면서 십자형태의 우주선, 테라포밍, 빡빡머리 죄수, 살신성인(?)등 여러부분에서 이미지가
겹치고 있는데.....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이라기엔 비슷한 생각들을 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영상을 옮길 의지까지 닮았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위의 <단테01>의 이미지와 아래 동영상을 비교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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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개인전 - <기억의 서 : K의 슬라이드>
20090924-20091011
브레인 팩토리
지난 개인전 <Un-Vanished Memory>展에서 사람이 떠난 빈집에 놓여진 사물들을 스케치 하며,
그 공간을 소유했던 사람과, 물건들의 역사, 그리고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의 모호한 중첩을
시도했던 것 처럼, 이번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展에서는 집 주변 공사현장에서 발견한
400여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단서로, 역시 그것의 주인과, 작가와, 관객의 기억들을 짜집어 나간다.
전시된 K씨의 흔적-편지, 엽서, 일기, 등을 살펴보며, K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 그 당시는
저랬을 법도 하겠구나,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왔을까, 저 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갔었을까, 이 사진에서
K씨는 누구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며 K씨의 흔적에 젖어들다가, 문득 전시 소개글을 읽어보니
슬라이드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작가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슬라이드의 이미지들마저,
작가에 의해 모호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에, 잠시 '헛' 하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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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는 법원이나, 신문사가 아니라 갤러리라는 사실, 즉 내가 해야 할 게임은 '탐정 놀이'가 아니라
'기억 만들기'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면서, 작가의 간극 매꾸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기로 한다.
40여년전 K씨의 기억과 오늘의 나 사이의 간극이, 작가의 상상력과 기억으로 해서, 과연 어떠한 형태로
매꾸어질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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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트 선재에서, 계원조형예술대학교의 주최로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키워드를 놓고, 프랑스 제8대학에서 오신 석학들과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5시까지 종일 진행되었지만, 나는 결혼식이 오전에 있는 바람에,
2시경부터 들어가 주형일 교수의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발제글부터 들을 수수 있었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짬은 안되지만, 간략히 소개/느낌을소개/느낌을 적어보자면,
주형일,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
- 대중에 속한 사람으로서, 사실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였는데, 다소다소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듯 했다.
인터넷의 블로그를 사용하는 행위는 자본이 좋아하는좋아하는 아주 착한 자발적인 무보수 노동자에 비해진다는 것,
공동체(즉, 세력)를 형성해서 인터넷을인터넷을 소유한 자본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의견 제시나,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통한통한 저작권의 무력화, DDOS를 연상시키는 사이트 공격 등의 극단적인 대안은
어쩔 수수 없이 자본과 공생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요구하기는 (발제자도 인정했다시피)
무리하다는 생각이생각이 들었다. 질의 시간의 이영준 교수 말마따나, 자본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보다는
자본에 자본에 이용당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쥘리앙 세레쥬, <자본주의의 사진적 재현에 관하여: 도시와 일상>
- 자본주의를자본주의를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결과적으로 결과적으로 '일상성'으로 초점이 모여지는 듯 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해변화해 나가며,
복잡한 양상들이 얽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시선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지엽적이라고 보이는 일상적인 것들이것들이 바로 도시의 모든 것 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은 반대로반대로 말하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미에 말미에 Eric Sadin의 문화분석적인 사진을 모범예(?)로 제시했다.
한데, 저기서 도시나, 자본주의를 빼고 '삶'을 넣어도 말이 그대로 될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삶, 도시의 삶이기 때문일까?때문일까?
(참고로 본문과 상관은 없지만 쥘리앙 세레쥬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한다.)
서동진, <생명의 이미지, 자본의 이미지>
- 익히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CT, MRI의 의학영상에서 부터, 첨단의 의학영상분야까지 소개를 하면서,
인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병의 진단을진단을 넘어서서 병의 확률을 이야기 하며
의료행위와 그 영상들을 자본종속적으로 변화시켜 간다는간다는 이야기. 달변과 신선한 주제로 흥미로웠다.
박상우, <사진 복제를 통한통한 개인의 식별>
- 용의자 검거에 사진이 도입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설명과, 그그 사진들의 복제되기까지의 과정들.
후반부는 주로 프랑스 경시청의 베르티용(최초로 사진을 용의자용의자 수사에 도입했음)의 노력에 촛점이 맞춰졌다.
발표하느라 진땀은 빼셨는데, 다소 발표 스킬이스킬이 부족하셨던듯..^^;

ps.1 발제글들이발제글들이 수록된 자료집을 사고 싶었지만, 품절인 관계로, 연락처만 적어놓고 왔다.
내가 듣지듣지 못한 앞서 발제글중, 프랑스와 슐라쥬의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적 관계의 관계들>은
번역도,번역도, 통역도 난해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
ps.2 장내에 들어서면서 놀랐던놀랐던 것은, 대략 2/3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청중. 연령대도 다양한듯 했다.
이렇게 많은많은 여성 예술(or 미학)인구에 비해..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으니..음...
뒤에 앉아앉아 있던 두 여자분은 통역기를 귀에 붙였다 땠다 하며, "통역이 너무한데? 이렇게이렇게 빼먹어도 되나?"
를 연발하고 있었는데..그저 부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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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주/건물주가 따로따로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이슈가 되는 곳이란다.
이곳의 상황을 아는대로 요약해보자면, 대지는 지덕사-양녕대군종친회 소유이고,
재개발을 노리고 들어온 투기성 무허가 건물주들이 조합을 만들어 2007년 동작구청으로부터
재개발 인가를 받아냈다. 한편 지덕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건물주와 세입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자기 소유의 땅에 건물을 새로 짓는 '민간'재개발을 추진을 하기 위해서,
재개발 인가 취소 소송과 동시에 철거용역을 동원해 건물 철거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건물을 헐고 나대지로 만들어 버리면 '민간'재개발은 누워서 떡먹기가 되므로)
641번을 타고 대림아파트 앞에서 내려 시장을 거쳐 30여분을 걸어 올라갔다.
오르는 길가에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나치며 엿들어보니,
대체로 재개발, 보상, 철거,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듯 했다.
길을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담장이 있는 번듯한 3층 4층 집들이 사라지고,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낮은 집들이 산등성이에 따닥따닥 몰려있다.
지적도에 표시나 될까 싶은, 이게 길이 맞을까 싶은 조악한 계단과 흙길이 그 사이로 얽혀있다.
군데군데 무너진 집들과, 흘러내리는 골재를 막기 위한 검은 그물들. 그리고 과격한 구호들.
지난 2월부터 지리하게 기습적으로 건물을 헐고, 몰아내기를 반복한 탓인지,
철거된 골재위의 검은 그물 사이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좀 더 올라서 내려다보니, 풍경이 참 처참하다. 검은 그물과 드러난 붉은 흙들 사이로 보이는
아직도 남아있는 집들.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의 녹음이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이미 사람이 떠나간 어느 집. 덩그러니 놓여진 아이들 장난감이 안스러운 가운데,
문 앞 마당에 던져놓은 검은 그물은, 이곳도 곧 헐어지고 말거라는 예고장처럼 느껴진다.

살던 이들은 떠나가고, 살던 건물들도 허물어졌지만, 남아있는 이들은 어떻게든 지내고,
또 버텨내야 할 터. 무너져내린 건물을 따라, 심어놓은 화분과, 일궈놓은 텃밭, 검은 그물사이로
솟아나와 헝클어진 호박넝쿨들이 여기 사는 이들의 희망을, 의지를, 소망을...
그리고 그렇게 감내해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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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3-20090920
아리랑 꽃씨
20090717-20090927
국립현대미술관
간만의 국립현대 미술관 나들이.
올해의 작가 <서용선>展과 일본/러시아/중국 거주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아리랑 꽃씨>展을 보았다.
서용선 작가는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이어서 단종의 폐위를 다룬 역사화와
도시인들의 군상을 다룬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위의 도록에서도 느껴지듯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선이 인상적이다.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과감하게 쓰여진 색채와 검은 선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막 분출될 것만 같은 억눌린 꿈틀거림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작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못했다라는 부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계유정란(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킨 사건)을 다룬 역사화와 당시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그의 그림이
단순히 역사화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암시한다. 자화상에 나타난 굳은 표정과 붉고 날카로운
눈매는 이 땅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사명감, 그리고 실천적, 현실참여적 작가로서 민중미술
계보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서용선 작가는 근래 철암의 폐광지역에서
철암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매월 세째주 토요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도슨트의 설명을 비롯 리플렛의 내용 등 전시 전반에 걸쳐서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인
시대의 현실보다는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현실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였다.
(이를테면 부조리한 실존, 실존적 고통,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등등..)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변하고 있고, 또한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보편적인 부분에서의
공감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작업에서 구체적인 시대 현실을 제거한다는 것은
작업의 의의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절이 수상하여 그런가? 하는 괜한 생각조차 든다. 말많았던 MB코드 인사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관장덕에 말이다.)
<아리랑 꽃씨>展은 일본/중국/러시아에 거주중인 1/2/3세대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전시 자체보다는 전시 중에 벌어진 사건이 흥미로워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1세대 한인 작가 한락연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작품 철거를 알리는 패널만이 존재할 뿐,
벽에 남은 못자국만이 작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장처의 특별한 사정으로 작품을 공개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라는데,
특별한 사정인 즉슨, 지난 7월 5일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유혈사태로 바짝 긴장한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이 모일만한 장소는 사전 차단하라" 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혹시나 1세대 한인
작가의 작품앞에 모여들 한민족들을 걱정하여 작품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혹시나'겠지만,
예술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주시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반응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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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무엇인가?(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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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흥군에서 밀고 있는 <금당8경>은 금당도를 한바퀴 돌며 해안가의 기암괴석(?)을 구경하는 것인데, 거리상 녹동항이 가깝운 항구이지만, 행정구역상 금당도는 완도군에 속해있다는 비화(?)가 있다고 한다. 출발전 인터넷의 사진들을 통해 어느정도 짐작한대로, 대단히 수려한 장관이라기 보다는 소박한(?) 시골섬의 풍경이 어울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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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김에 소록도를 한번 둘러볼까 하였으나, 혹시나 민박집에 전화해보니 뭔가 이상하게 예약을 해놓은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기에, 일단 숙소 확인을 위해 <나로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나로도는 최근 위성추진체발사 기지로 이슈가 되고 있는 곳. 고흥반도에서 다리를 건너 <내나로도>로, 그리고 다시 다리를 건너 <외나로도>로 이어진다. 역시나 예약이 중복으로 되어있는 턱에, 살던 방을 내어주시는데, 마침 옆집에 방이 있다 해서 <고흥민박>에서 묶기로 했다. 가족단위 피서객이 대부분인 나름 조용한 시골 해수욕장. 흐린날씨가 아쉽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바다에 몸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신나게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해수욕장 경사가 꽤나 완만한 탓에, 해안에서 상당히 나아가도 허리까지 물이 찰랑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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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알람을 착각해서 새벽 5시 20분부터 바지란하게 움직인 덕에 8시경 해안드라이브코스로 제격이라는 남열해수욕장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비온다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화창한 날씨. 듣던대로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들이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상쾌한 아침 햇살과 바람, 그리고 파란 바다와 멀리 가까이 보이는 조그마한 섬들이,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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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착한 남열 해수욕장은, 둘러보고만 가기는 너무 아쉬울 정도였는데, 연신 어제가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바다에 빠졌어야 했다고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송광사의 뛰어난 점이라면 계곡과 더불어 절 자체의 규모도 상당하고, 외관 또한 빠지지 않는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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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수육(동파육) 거리를 샀는데, 너무 살코기로만 사오는 바람에 다소 팍팍한 수육이 되어버렸다. 나름 필살기로 준비한 요리인데,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는 담양을 들러 소쇄원과 메타세콰이어길(관방제림)을 들렀다. 작년 초에 들렀던 곳이라 다소 감흥은 덜했는데,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죽녹원으로 이어지는 관방제림은 나무 그늘 밑으로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거닐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남대문>식당에서 떡갈비를 먹고 슬금슬금 서울로 돌아오니 자정을 넘긴 시각. 2009년 여름 고흥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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